[소소주담 예고편] #1. 첫오르다 - 2016 소소주담(小小奏談)


#1. 첫 오르다

 

어정쩡한 아이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억해보자.(기억이 안 날수도 있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에 4분단 중간에서 뒤로 넘어가는 줄 어디쯤 있는 듯 없는 듯 희끄무레하게 앉아있던 그 아이다. 얼굴은 하얀데 표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웃으면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목소리가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공부를 잘 하지도 못하지도 않아서 선생님도 가끔 이 아이가 반에 있다는 것을 까먹는, 그러니까 29번의 아이인데 28번까지 질문을 던지다가 문득 30번으로 뛰어 넘게 되는 번호의 아이다. 그 어정쩡한 아이는 누군가를 좋아했다. 어정쩡한 아이가 좋아하던 누군가는 알 리가 없었다. 어정쩡한 아이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정쩡한 거리에서 누군가를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뚜렷한 누군가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그럴 때마다 어정쩡한 아이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어정쩡한 표정으로 마음을 차곡차곡 접곤 했다. 어정쩡한 아이가 커가면서 좋아하는 누군가가 이따금 바뀌었으나 또 다른 누군가는 결코 어정쩡한 아이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어정쩡한 아이는 지금 또다시 누군가를 좋아한다. 사라졌다가도 다시금 생기는 좋아하는 마음은 늘 처음과 같다. 어정쩡한 아이는 초승달을 좋아한다. 초저녁이라는 애매한 시간, 아직 밝은 오후 혹은 어둑해지는 저녁에 문득 한기가 들어 몸을 움츠리다가 하늘을 보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초승달을 좋아한다. 있으면 몹시 반갑고 없으면 어쩔 수 없다. 어정쩡한 아이는 초승달을 좋아하나 사실 더욱 좋아하는 것은 초승달에서부터 어느만치 어정쩡한 거리에 서성이는 샛별이다. 아니, 다시 말하자. 아이는 초승달이 뜰 때 덩달아 어정쩡하게 떠있는 샛별을 좋아한다. 초승달이 떠오르면 아이는 샛별이 어디쯤 있나 초승달에서 애매하게 떨어진 거리 어드메를 더듬곤 한다. 마침내 떨떠름하고도 새초롬한 표정으로 초승달을 좋아해도 좋아하지 않은 척 떨어져있는 샛별을 발견할 때면 어정쩡한 아이는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혼잣말한다.

 

참 어여쁜 거리로구나.’

 

어정쩡한 아이는 누군가를 어여쁜 거리로서 좋아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처음 오르는 그 어정쩡함을 좋아한다.

 


글: 차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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